제60회 한국민속예술 경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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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 탈놀이 _경상남도

참가번호 : 19 참가팀 :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사)고성오광대보존회 경연일시 : 10.3.(목) 13:00~13:30 참가종목 : 가면극
작품해설

고성오광대의 역사는 조선말 고종 30년(1893년) 고성의 부사로 부임한 오횡묵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오횡묵은 음력 12월30일 제석을 맞이하여 읍내에서 벌어진 세시행사를 목격하고 이 광경을 고성 총쇄록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내가 풍운당을 돌아다보니 아전의 무리들이 나악을 갖추고 유희를 하고 있다” 이것이 무어냐 물으니 “해마다 치르는 관례입니다”라고 한다. 또 “오래된 관례”라는 아전의 말을 쫓아 찾아보니 오래된 문헌으로 1530년(중종25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의 기사를 찾을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탈놀이이다.
또한 조선말 당시 고성지방에 괴질이 크게 번졌는데 이때 남촌파 선비들이 고성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10km거리에 있는 무이산(청량산)으로 피병을 간 일이 있는데 그때 이들이 시조나 노래를 하고 차츰 오광대 놀이를 놀았다고 하며 고 이윤희, 고 정화경 두 분이 잘 놀아 중심이 되고 김창후 옹과 그 밖의 15~16명의 젊은이들이 기능을 배우고 연마 하였다고 한다.
1920년에는 정화경, 이윤희 명인이 나오고 이들은 김창후, 홍성락, 천세봉 명인에게 예능을 대물림한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의 식민지상황이었으며 백성의 생활상은 수탈정책으로 인해 점차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해방이 되자 곧 세 분 명인은 분주히 오광대의 모임을 규합하고자 발 빠른 행보를 하였다.
그 첫 열매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있었다. 당시에 최신식 건물로 가야극장이 개관하였는데 낙성식 기념공연으로 고성오광대놀이를 공연한 것이다. 해방 후 탈놀이가 복원된 것이 1950년 후반인 것을 감안하면 고성의 1946년 공연은 가면극 부흥의 시대를 앞당긴 매우 의미 있는 공연인 것이다.
이 시기에도 연희자 천세봉 옹 은 고성오광대의 연희대본을 필사한 오광대 “흥유순서급자담”을 남겨 학자가 채보하기 전 연기자의 손에 의해 문자로 기록된 보기 드문 성과를 물려주게 된 것은 고성오광대 전승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고 1973년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의 국무총리상, 1974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탈춤으로서 현존하는 영남형 탈춤 중 가장 그 원형에 가깝게 전승되고 있으며 극보다는 춤이 월등히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성오광대는 1과장 문둥북춤, 2과장 오광대놀이, 3과장 비비놀음, 4과장 승무, 5과장 제밀주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과장에서 큰어미가 죽은 후에 상여놀이로 이어진다.

작품구성

순서 과장명 세부내용
1 문둥북춤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자손이 문둥이가 되었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상황을 표현한다. 처음에는 인생에 대한 좌절과 절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병마의 고통을 춤으로 표현하다가 스스로 내면의 고통을 참고 극복하며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다시 일어나는 희망적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소고를 기묘하게 어르며 빚어내는 엇장단의 여유와 걸먹는 춤사위가 특징이다.
2 오광대놀이 봉건 사회에 있어 양반들의 권세로 서민들을 멸시하며 천대하고 괴롭히는 그 시대의 아픔을 말뚝이라는 서민의 대변자가 등장하여 양반들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추악상을 낱낱이 꼬집어 내어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는 과장이다. 말뚝이의 춤사위는 천?지?인 삼재를 형상화해 인간의 평등과 권리 회복을 염원하는 춤사위이며 큰 동작과 어깨 짓은 활기가 넘치고 역동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양반춤은 부채로 당시의 권세를 풍자하며 선조들의 여유와 풍류를 엿볼 수 있으며 오방색깔의 화려함은 자연의 색으로서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3 백인 덧배기 1970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대학생들이 다녀간 전수교육관은 단연 고성오광대전수관이다. 지금은 버스로 4시간이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8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남녂의 끝자락이 고성이었다. 당시 대학 탈패들이 고성오광대를 배우고자 전수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한 책임과 의무였다. 그 책임과 의무는 지금도 이어져 여름, 겨울이면 전국의 대학생들이 넘쳐난다. 경상도에서 가장 많은 춤이 집약되어있는 고성오광대의 춤을, 고성오광대보존회와 그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탈패꾼들이 즉흥적으로 판을 만든다.

작품사진

Woody
Wo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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