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공지] 소리여행, 아리랑 로드 안내

2014.09.19, : KST _한국민속예술축제






이 땅의 등골에서 우러난 노래

짙푸른 청룡꿈을 꾸나니
어화청춘
, 벗이여 가자스라!
  

1. 길을 떠나며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밥이다.
아리랑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고종 시절인 1865년부터 1872년 사이였다. 당시 화재로 훼손되었던 경복궁의 중건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일꾼이 모였고,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팔도의 광대들도 모여들었다. 경복궁은 각 지역의 민요가 모이고 흘러가는 통로요 광장이었다. 특히 목재를 운반해 오던 강원도 정선지역의 떼꾼들이 부르던 아리랑이 일꾼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고종도 타령에 빠져들어 잘하는 이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목하 아리랑 바이러스가 시작된 것이었다. 유행은 한양뿐이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각자의 고향으로 되돌아간 일꾼들에 의해, 떠도는 광대들에 의해 지역적 특색에 맞춰 변화되며 유행하였으니 최초로 아리랑을 악보로 옮긴 헐버트는 말했다.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밥이다라고.

1926년 나운규 영화의 주제가 ‘아리랑’은 일제 치하의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과 맞물려 뜨거운 공감을 일으켰고, 소리 없던 눈물에 응축되었던 설움의 분출을 부르며 전국적인 대유행을 만들었다. 만주와 북간도 등지에서도, 광복군의 독립투쟁가로 불리고 정전을 선언하는 자리 등 대한민국의 위기와 고난의 수많은 장면에서 민족의 희망가로 발돋움했다.

오늘날, 음악적인 갈래로는 50여 종, 노랫말 수로는 8,000여 수, 분포지역으로는 한반도는 물론 128개국에 달하는 전 교포 사회에 퍼져있는 '아리랑'.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열린 선율'이 라 호평하며 자신들의 음반에 싣고 공연을 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2012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노래 따라 물길 따라

아리랑을 전한 떼꾼들, 그들은 아우라지강에서 태백산의 황장목으로 떼를 지어 급류를 타고 생과사의 래프팅을 하였다. 정선에서 영월까지의 비좁고 거친 물길을 꼴짜기 안이라 하여 ‘골안떼길’이라 하였고, 영월에서 마포까지의 물길을 ‘아랫강 물길’이라 하였다. 특히 골안뗏길은 험하여 “아침밥이 사잣밥”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위험천만한 떼, 그러나 그들이 목숨을 건 이유가 있었다. 목숨을 담보한 만큼 큰돈이 쥐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말하는 “떼돈 번다”는말이이위험천만한래프팅에서생긴말이다.

<아리랑로드>는 길라잡이패(풍물단 소리꾼으로 구성된 공연팀)와 <아리랑로드> 순례단 50인이 모여 강원도 정선에서 출발한다. 임금의 관, 재궁의 재료인 황장목이 그려진 ‘황장노송도’를 모시고 여정의 무사무탈을 기원하는 강치성을 시작으로 골안 뗏목길의 4 대 여울인 ‘정선 북면의 상투비리’, ‘정선 용탄의 범여울’, ‘평창 미탄의 황새여울’, ‘영월 거운리의 된꼬까리’를 지난다. 그리고 충주호에서는 관광유람선에 승선하여 옛 남한강 수로를 내려가 두물머리를 지나 마포나루에 이르는 남한강 1천리 길을 가는 것이다.

“어화청춘! 벗이여 가자스라” <아리랑로드>는 역동적인 소리여행이다. 생애를 건 래프팅으로 나무와 노래를 운반했던 거친 물길이 기다리는 여정이다. 기본적으로는 버스에 승차하지만 상당한시간의 래프팅과 트래킹이 필요하다. 젊은 답사단이 함께해 발품으로 만난 아리랑의 사연을 온라인상에 올려 다시금 새로운 <아리랑로드>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여행이다.


2.
불여일견 <아리랑로드> ‘5경’

아우라지 강치성 (26일 오전 11시부터 13시 무렵까지 아우라지)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어우러지는 아우라지. “아침밥이 사자밥”이라는 말처럼 저승길이 될지 모르는 길을 앞두고 올리는 기도가 ‘강치성’이었다. 갈대꽃 우거진 ‘골지천’에서 잔을 올리고 길라잡이패(풍물패와 소리꾼)들이 ‘황장노송도’를 모시고 뗏목에 오른다. 벼랑아래 짙푸른 강에 두둥실 뜬 뗏목과 떠나는 자를 위해 부르는 이별의 노래 아리랑... 뗏목은DL 500M정도 내려가면 뗏목을 엮은 여량주민들과 길라잡이패들이 함께 어우러져 풍물을 울리고 아리랑을 노래하는 아우라지 풍경이 제 1경이다.

연포
, 세월이 흘러가더라 (26일 오후 6시 무렵부터 27일 오전 8시무렵까지)

버스에 분승한 답사단은 상투비리와 범여울에 풍물소리를 고하고 제장에 도착한다. 보트에 분승하여 노를 저어 연포로 간다. 골안뗏길 중 수려한 경관과 느린 유속으로 산천경계를 할 노른자위 물길이다. 2시간을 저어 도착하면 깎아지른 벼랑이 감싼 포근한 마을 연포가 나온다. 시간이 멈춘 듯 유유한 공간에서 아리랑 강변의 마지막 주모 이향복(84세) 할머니를 만나 삶과 사연과 노래를 듣는다. 아직 남은 담배건조장의 풍경은 이미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 찍어가 알려져 있다. 밤 하늘 별과 함께 보는 연포의 속살이 제 2경이다. 

전산옥 주막
, 옛터에서 옛 소리를 듣다. (27일 오전 11시 무렵 쯤)

연포에서 출발한 답사단이 평창 미탄면 마하리의 ‘황새여울’을 지나고, 어라연 밑의 급류 ‘된꼬까리’를 지나면 주막터가 있다. 산옥이의 팔은야 객주집의 벼개요 붉은에 입술은 야 놀이터의 술잔일세아리랑에실명이나오는실존인물전산옥의주막터다. 골안떼 4대 여울을 벗어난 노련한 떼꾼들도 그녀의 치마폭은 벗어날 수 없다. 정선 영월간의 백 개의 주막, 그중 제일이 전산옥 주막이다. 청초 우거진 곳에 묻힌 폐허 속에서 마지막 뗏꾼 홍원도(81세) 선생을 만나 소리와 옛 이야기를 듣는 게 제3경이다.

으시시비비미(황공탄) 진혼제(27일 오후 4시 무렵 쯤)

골안뗏길을 벗어나 영월에서 마포나루까지의 물길은 아랫강 물길이라 한다. 골안떼처럼 험한 여울이 없다. 그러나 제천 청풍 즈음에 황공탄이 있다. 우리말로는 이름도 으스스하게 ‘으시시비비미여울’이다. 숱한 목숨을 앗아간 여울은 이제 충주호 밑에 가라앉았다. 답사단은 장회나루에서 충주호유람선에 승선하여 청풍 즈음의 물길 위에서 진혼제를 벌인다. 남해안 별신굿 인간문화재 정영만의 묵직한 소리로 혼을 불러 위로하는 풍경이 제4경이다.

두물머리 합굿
(28일 오전 11시 쯤)

양수리, 우리말로 두물머리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정선 쪽 남한강의 아리랑과 인제 쪽 북한강의 아리랑이 만나고 경기도의 아리랑이 만난다. 북을 울림을 나아감이고, 징을 울림을 물러섬이다. 진퇴를 거듭하며 형을 만드는 풍물단의 판굿이 있고 소리꾼들의 소리굿이 있다. 이제 덕소 미음 마포를 거쳐 경복궁에 입궁하는 것이다. 가을 강변에서 울리는 풍물놀음과 아리랑, 그리고 답사단이 함께 어우러져 여울물 같은 난장이 함께 만드는 제5경이다.
 

3. 세부일정

여정일정 : 9월 26일~28일 (2박 3일) 

 


 

성읍민속마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정의현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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